나를 슬프게 하는 것들 / 강경우
1. 수만 광년을 날아도 이르지 못할 별이 있는가 하면 눈만 감아도 다가서는 불꽃이 있습니다.
군함인 듯 보이는 섬 하나엔 등대가 있습니다. 날마다 마스트 높이 불 밝히고 밤배는 어디론가 달려가지만 아침이면 섬은 늘 제자리에 있습니다.
2. 바다가 출렁거립니다. 엷은 바람을 타고 물안개가 절벽을 기어오르고 있습니다. 그 절벽에 뿌리내린 소나무에 나일론 목줄이 감겨 있습니다. 해가 갈수록 하얀 송진이 뚝뚝 떨어지고 있습니다.
3. 외줄 잎으로 하늘을 그려도 붓은 붓꽃입니다. 가시 많은 해당화가 말라비틀어졌어도 명줄을 놓지 않고 있습니다.
가지 끝에 철늦은 꽃 한 송이 파리가 날자, 폴폴 똥 냄새를 날리고 있습니다.
4. 개는 컹컹 짖어도 제 주인을 알아보지만 남을 위하는 척 알 까는 오골계는 뼈까지 검습니다.
남의 아픔을 들쑤시는 잔인함, 이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피 묻은 독수리 머리가 보여서 비위가 약한 나는 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5. 어제부터 머리가 아팠습니다. 고장 난 컴퓨터는 뚜껑을 열어도 속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그래픽 카드는 멀쩡한데 하드 디스크가 썩어있었습니다.
누굴 사랑한다는 이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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